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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례신문보도] ‘꽃뱀 프레임’ 이겨내고 성폭력 민사냈지만 소멸시효 ‘장벽’

작성자
jay529
작성일
2022-12-12 20:59
조회
3676
2018.11.29.한계레 보도

김재희 변호사는 “아동 성 학대를 당한 피해자가 성년이 된 뒤 3년 이내에 민사소송을 결심하여 진행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로 상당수는 대학을 졸업하고 경제적 자립을 시작한 25살 전후가 가장 많다”며 “현행법은 아동 성폭력의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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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뱀 프레임’ 이겨내고 성폭력 민사냈지만 소멸시효 ‘장벽’








화 ‘성폭력 피해자, 민사소송을 제기하다’ 토론회
도가니 사건 계기로 아동 성범죄 공소시효 사라졌지만
‘손해 안 날 3년·발생한 날 10년’ 민사 소멸시효는 여전
“아동 성폭력 특수성 고려해 ‘새로운 계산법’ 적용해야”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진단 근거로 소멸시효 주장하기도




‘성폭력 피해자 민사소송을 제기하다’ 토론회가 열린 28일 서울 종로구 변호사회관에서 박윤숙 한국성폭력위기센터 소장이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 오연서 기자

‘성폭력 피해자 민사소송을 제기하다’ 토론회가 열린 28일 서울 종로구 변호사회관에서 박윤숙 한국성폭력위기센터 소장이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 오연서 기자



지난해 김은희(27)씨는 16년 전 자신을 성폭행한 테니스 코치를 법정에 세웠다. 2001년 7월부터 2002년 8월까지 초등학생이던 김씨를 4차례 성폭행한 혐의(강간치상)였다. 지난해 10월 1심 법원은 테니스 코치에게 징역 10년에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 120시간을 선고했고, 올해 7월 대법원은 징역 10년의 실형을 확정했다. 김씨의 이야기는 ‘전 테니스 선수의 미투’로 여러 언론에 보도됐다. (▶관련기사: 17년의 투쟁’ 성폭력 코치 죗값 묻는 전 테니스 선수의 #미투)

김씨는 최근 또 다른 싸움을 벌이고 있다. 지난 7월 김씨는 테니스 코치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형사소송에서) 떳떳하게 승소했는데도 세상 사람들이 나를 ‘꽃뱀’으로 보진 않을까 걱정됐어요. 패소하면 1천만원에 달하는 소송 비용을 내는 것도 두려웠습니다. 그런 현실이 너무 비참했어요.” 김씨는 다시 한 번 맞서기로 했다. 성범죄로 인해 고통받는 피해자들을 위한 ‘판결문’을 받고 싶었다. 김씨는 “가해자가 받은 응당한 죗값이 저의 피해와 손해를 배상해주지는 못한다”며 “저의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민사소송을 제기했다”고 말했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2012년 8월부터 만 13살 미만의 여자 어린이나 여성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성폭행(강간 또는 중강간) 범죄는 시효가 사라졌다. 이른바 ‘도가니 사건’으로 불리는 광주 인화학원 성폭력 사건의 후속 조처였다. 그렇다면 아동 성폭력의 경우 민사소송을 통한 피해 배상은 어떨까? 민법은 여전히 가혹했다. 법원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많은 피해자들의 소송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아동 성폭력의 특수성은 반영해 새로운 ‘소멸시효 계산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피해자에겐 형법보다 가혹한 민법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변호사회관에서 열린 ‘성폭력 피해자, 민사소송을 제기하다’ 토론회에 모인 전문가들은 민법의 소멸시효 규정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선혜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소장은 “성폭력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는 성폭력특별법과 형사소송법 개정 등을 통해 늘어나거나 폐지되었지만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 소멸시효는 그대로”라며 “소멸시효로 인한 배상청구의 어려움과 한계는 성폭력 피해자가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는 데 걸림돌로 작동한다”고 말했다. 형사소송의 공소시효와 민사소송의 소멸시효 사이에 불균형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민법 766조를 보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 소멸시효는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이 지나거나 손해가 발생한 날로부터 10년’이 지나면 완성된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17년 전 성폭력 피해를 당한 김씨는 형사소송에서 승소했음에도, 손해배상 소송에선 소가 각하 또는 기각될 가능성이 크다. 김재희 변호사는 “아동 성 학대를 당한 피해자가 성년이 된 뒤 3년 이내에 민사소송을 결심하여 진행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로 상당수는 대학을 졸업하고 경제적 자립을 시작한 25살 전후가 가장 많다”며 “현행법은 아동 성폭력의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해정 국민대 교수(법학부)는 “독일은 2013년 민법개정을 통해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당한 경우 피해자가 만 51살이 될 때까지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는 완성되지 않는다”며 “아동 성폭력 사건에서는 민사소송에서의 소멸시효를 적용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진단을 손해의 시작으로

아동 성폭력 피해자들은 인지의 어려움으로 후유증을 뒤늦게 알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동 성폭력 사건의 특징들을 종합하면, 피해자는 △그루밍(가해자가 취약한 점이 있는 피해자와 친분을 쌓은 뒤 피해자가 심리적으로 자신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이용해 성적으로 학대하거나 착취하는 행위)으로 인해 성폭력 인지의 어려울 뿐 아니라 △성장 과정에서 범죄 피해의 고통은 증폭되고 △시간이 지난 뒤에야 외상후스트레스장애 등을 통해 성폭력 후유증을 깨닫게 된다.

전문가들은 아동 성폭력의 특수성을 고려해 새로운 ‘소멸시효 계산법’을 제안했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진단 시기를 ‘손해를 구체적으로 안 날’로 보고 소멸시효 3년을 적용하자는 것이다. 실제 2006년 호주 대법원은 사건 뒤 30년이 지나 발병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이유로 시효를 연장한 바 있다. 20년 전 서울의 한 사립초등학교에서 테니스 코치로부터 성폭행 피해를 입은 이지혜(가명)씨는 이 같은 논리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씨는 어린 시절 성폭행으로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진단을 받았기 때문에 손해는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며 손해를 안 날의 기산점을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진단일인 올 7월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두려움과 역겨움에 시달리다 올해 3월 가해자를 처벌하겠다고 용기를 냈지만 공소시효가 지나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며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민사소송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의 의미란?



“그 사람의 경제적 형편의 어려움으로 충분히 배상받지 못해도 좋다. 그동안 힘들었던 나에 대한 보상, 나의 권리라는 것을 공인 받는 것이고, 그만큼 가해자의 잘못이라는 것을 알게 하고 싶다.”

-32살, 여, 과거 강제추행 피해자(2018)

“굳이 민사까지 해서 오해받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가해자의 태도와 형사처벌 결과는 너무 실망이에요. 손해배상 청구를 통해 처벌을 더 분명히 하고 싶어요. 나는 아직까지 이렇게 힘든데….”

-24살, 여, 과거 사범에 의한 지속적인 성추행 피해자(2017)



전문가들은 민사소송을 통해 피해자가 스스로를 치유하고 권리를 회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박윤숙 한국성폭력위기센터 소장은 “금전적 보상은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자신을 보살피고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수단”이라며 “성폭력 피해의 특성상 정신적 피해와 후유증에 대해 정당하게 보상받기 위해서 손해배상 청구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황춘화 오연서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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