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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보도] 민사소송 제기해도 '꽃뱀 프레임'·'소멸시효'와 싸워야 하는 성폭력 피해자들
[2018.11.28. 경향신문보도 ]
# 김재희변호사 관련보도
김씨와 ㄱ씨의 사건을 대리하고 있는 김재희 변호사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 성폭력이 아닌 다른 피해가 발생한 시점을 소멸시효의 기산점으로 볼 수 있을지 등 법리적 쟁점이 있다. 법원에서 성폭력 범죄와 관련된 민사소송에서 이러한 주장이 받아들인 판례는 사실 없다”며 “김씨와 ㄱ씨가 소송에서 승소하면, 아동 성폭력 사건의 소멸시효에 대한 중요한 판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또 “많은 아동 성폭력 피해자들은 성년이 된 직후 소멸시효인 3년 안에 소송을 결심하는 건 매우 드물다”며 “한국에선 경제적 자립 시기도 미국 등에 비해서 늦은 편인데, 일반적으로 가해자들에 대해 법적 조치를 결심하는 시기는 25세 이후가 가장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소멸시효를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으로 제한하는 것은 아동 성폭력 범죄에 대한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 규정”이라며 “아동 성범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폐지됐는데, 민사소송에서는 소멸시효 제도가 유지돼 가해자의 중형이 확정돼도 피해 배상을 못 받는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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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전 초등학생이었던 김은희씨(27)는 학교 테니스 코치에게 성폭행당했다. 이 코치는 지난해 10월, 2001년 7월부터 2002년 8월까지 초등학생 제자였던 김씨를 수차례 성폭행하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게 한 혐의(강간치상)로 기소돼 징역 10년에 120시간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를 선고받았다. 언론은 ‘16년만에 단죄’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김씨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피해를 배상 받기 위해 시작한 민사소송에서 힘든 투쟁이 다시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변호사회관 조영래홀에서 열린 한국여성의전화 주최 ‘성폭력 피해자, 민사소송을 제기하다’ 토론회에서 자신이 겪은 성폭력 피해와 민사소송 과정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렸다. 김씨는 징역 10년형이 확정된 가해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 2심을 진행 중이다.
김씨가 처음 싸워야 한 건 ‘꽃뱀 프레임’이었다. 많은 성폭력 피해자처럼 김씨도 성폭력 피해를 복구하기 위한 배상을 요구하는 순간 ‘꽃뱀’으로 몰리게 될까 두려워 민사소송을 망설였다. 완전무결한 성폭력 피해자상을 요구하는 시선에, 범죄의 진상규명 외에는 어떤한 배상도 요구하면 안 될 것 같았다. 형사소송에서 승소해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소송을 시작한 건 피해 복구를 위해 피해자가 당연하게 주장할 수 있는 권리를 판결문을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소송을 결심하고 가장 먼저 걱정됐던 것이 패소 비용이었습니다. 패소할 경우 비용이 1000만원 이상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소송을) 안하려고도 했습니다. 비용을 먼저 걱정해 계산하고, 소송할지 말지 고민하는 현실이 원망스러웠습니다. 피해는 분명히 있는데, 아무런 배상이 없는 현실이 억울했습니다. 그래도 피해자의 정당한 권리를 위해 대법원까지 가기로 각오했습니다. 조정이나 합의 없이 정당한 판결문을 받고 싶습니다.”
김씨는 피해를 보상 받기 위해 넘어야할 장벽은 우선 ‘소멸시효’의 벽이다. 민사소송에서 소멸시효는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이다. 김씨가 성폭력 피해를 당한 건 17년 전이다. 통상적인 민사소송 판례에 따르면 소멸시효가 지나 손해배상 청구가 받아들여지기 힘들다. 형사소송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낸 김씨는, 소멸시효가 지났지만 법원의 중재로 조정이 이뤄질 가능성이 컸다. 소송을 계속할 경우, 기존 판례대로라면 패소할 확률이 높다.
이날 토론회에서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린 ㄱ씨 역시 김씨처럼 20년전 초등학생 시절 테니스코치로부터 셀 수 없는 성폭력 피해를 입었고, 가해자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ㄱ씨는 김씨의 이야기를 언론을 통해 접하고 용기를 얻었다. 테니스 코치였던 가해자가 여전히 학교에 재직 중이란 사실도 알게됐다. 그러나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해 수사기관에 신고했지만 공소시효가 지나 형사소송을 제기하지 못했다. 손해배상을 위한 민사소송을 제기했지만, 김씨처럼 소멸시효의 장벽을 넘어서야 한다. 그래야 우울증과 불안,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피해를 조금이나마 배상받을 수 있다.
“저와 같은 피해자가 또 있진 않을지, 피해가 은폐되는 것은 아닐지 두렵습니다. 이런 피해를 막기 위해선 과거의 성폭력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 용기를 내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현실의 벽은 너무 높았습니다.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매일 약으로 하루를 버텨야 했습니다. 성폭행과 구타당한 트라우마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도 겪게 됐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터무니없이 짧은 시효가 저 같은 성폭력 피해자들을 두 번 죽이고 있습니다.”
김씨와 ㄱ씨의 사건을 대리하고 있는 김재희 변호사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 성폭력이 아닌 다른 피해가 발생한 시점을 소멸시효의 기산점으로 볼 수 있을지 등 법리적 쟁점이 있다. 법원에서 성폭력 범죄와 관련된 민사소송에서 이러한 주장이 받아들인 판례는 사실 없다”며 “김씨와 ㄱ씨가 소송에서 승소하면, 아동 성폭력 사건의 소멸시효에 대한 중요한 판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또 “많은 아동 성폭력 피해자들은 성년이 된 직후 소멸시효인 3년 안에 소송을 결심하는 건 매우 드물다”며 “한국에선 경제적 자립 시기도 미국 등에 비해서 늦은 편인데, 일반적으로 가해자들에 대해 법적 조치를 결심하는 시기는 25세 이후가 가장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소멸시효를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으로 제한하는 것은 아동 성폭력 범죄에 대한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 규정”이라며 “아동 성범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폐지됐는데, 민사소송에서는 소멸시효 제도가 유지돼 가해자의 중형이 확정돼도 피해 배상을 못 받는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성범죄 피해자들이 민사소송에서 겪게 되는 다른 문제들도 논의됐다. 배상액이 터무니없이 적어 민사소송을 진행할 실익이 적다는 점과 민사소송의 어려움 탓에 많은 피해자들이 가해자들의 합의 요구에 응하게 되는 점도 지적됐다. 특히 합의는 피해 회복의 노력으로 받아들여져 실질적인 피해 회복여부와 관계 없이 감형 등의 요소로 받아들여진다는 지적도 나왔다. 최선혜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장은 “가해자와 합의를 했다는 이유로 검찰에서 피해자를 무고죄로 기소하는 경우도 있다”며 “합의를 통해 성폭력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받고자 하는 노력은 가짜 성폭력 피해자의 다른 의도로 해석되고, 무고 피의자가 될 수 있다는 점도 각오해야 한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