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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소리] 피해자에 '소멸시효'로 2차 가해하는 법원

작성자
jay529
작성일
2022-12-12 21:05
조회
3843
** 김재희변호사 인터뷰 요약

 

 

 

김 씨 등 다수의 아동 성폭력 피해자를 변호한 김재희 변호사는 “피해자들이 가해자에 대한 법적 조치를 결심하는 시기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경제적으로 자립한 25세 이후”라며 “아동 성폭력 사건의 특성상 뒤늦게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지적했다.

 

아동 성폭력 사건 특징으로 피해 발생 이후 상당한 시간이 흘러 손해를 인지한다는 점이 꼽혔다. 성 경험 부족, 가해자와의 관계 등으로 피해 당시 성폭력을 인지하지 못하다가 성장하거나 가해자로부터 독립해 뒤늦게 상황을 알고 고통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일상생활에서 가해자와 우연히 대면하거나 유사 사건 보도를 접하는 등 어떠한 '트리거'를 통해 무의식 속에 존재하던 피해 기억이 재현되기도 한다. 이로 인해 피해가 발생한 지 한참 후에도 언제든지 새로운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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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변호사는 “피해자 등이 손해 및 가해자를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인식한 날을 의미한다”라며 “이때 그 인식은 손해 발생의 추정이나 의문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위법한 가해행위로 손해가 발생했다는 사실까지 알아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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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10살 때 성폭력, 고통 점점 커지는데…” 피해자에 ‘소멸시효’로 2차 가해하는 법원

 




성폭력 주간을 맞은 26일 서울역 앞에서 열린 2014 성폭력 추방주간 서울지역 캠페인에서 여경들이 성폭력 추방 캠페인을 하고 있다

성폭력 주간을 맞은 26일 서울역 앞에서 열린 2014 성폭력 추방주간 서울지역 캠페인에서 여경들이 성폭력 추방 캠페인을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김은희 씨는 2016년 5월 테니스 대회에서 초등학생 시절 자신을 성폭행한 테니스 코치와 우연히 마주쳤다. 가해자를 본 순간 김 씨는 15년 전 그때로 돌아갔다. 그는 그 자리에서 30분을 소리 내 울었고, 이후 3일간의 기억을 잃었다.

김 씨는 가해자와 대면한 후 무의식 속에 남아있던 어린 시절 피해 고통이 재현돼 일상생활을 지속할 수 없었다. 같은 해 7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진단을 받은 그는 처음으로 아동기 성적 학대로 인해 정신질환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성적 학대를 당한 10살부터 심각한 정신장애를 겪었던 김 씨는 15년 만에 가해자를 형사 고소했다. 증거수집 등 문제로 소송을 포기한 적도 있었지만, 가해자가 계속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에 용기를 냈다. 지난해 7월 가해자는 징역 10년형을 확정받았다.

아동 성폭력 피해자 권리행사
공소시효 없어지니 ‘소멸시효’ 가로막아

그러나 김 씨의 재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는 형사 재판 항소심 선고 이후 가해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어려운 결정이었다. 아동 대상 성폭력에 대해 형사상 공소시효는 유예 또는 일부 폐지됐지만, 민사상 ‘소멸시효’는 여전히 피해자의 권리행사를 가로막았다.

소멸시효에서 핵심은 ‘기산점’(기간의 계산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민법 제166조 제1항에 따르면 소멸시효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로부터 진행한다. 즉 소멸시효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음에도 행사하지 않는, ‘권리 위에 잠자는 자’를 보호하지 않기 위해 존재한다.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해 민법 제766조는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간 행사하지 않거나(단기소멸시효),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이 지나면 그 시효가 소멸한다(장기소멸시효)고 규정한다.

일반 사건 기준으로 보면 2001~2002년경 피해를 경험한 김 씨의 손해배상청구권 소멸시효는 모두 완성됐다. 성적 침해를 당한 미성년자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해 성년까지 소멸시효 진행을 유예하는 법무부의 개정안에 따른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전문가들은 “아동 성폭력 사건의 특수성을 고려해 손해배상청구권 소멸시효의 기산점을 최대한 늦춰 피해자를 보호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지난 9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한국여성의전화 등 주최로 ‘성폭력 피해자의 손해배상권과 소멸시효’ 한-일포럼이 열렸다.



지난 9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한국여성의전화 등 주최로 ‘성폭력 피해자의 손해배상권과 소멸시효’ 한-일포럼이 열렸다.

지난 9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한국여성의전화 등 주최로 ‘성폭력 피해자의 손해배상권과 소멸시효’ 한-일포럼이 열렸다.ⓒ한국여성의전화


김 씨 등 다수의 아동 성폭력 피해자를 변호한 김재희 변호사는 “피해자들이 가해자에 대한 법적 조치를 결심하는 시기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경제적으로 자립한 25세 이후”라며 “아동 성폭력 사건의 특성상 뒤늦게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지적했다.

아동 성폭력 사건 특징으로 피해 발생 이후 상당한 시간이 흘러 손해를 인지한다는 점이 꼽혔다. 성 경험 부족, 가해자와의 관계 등으로 피해 당시 성폭력을 인지하지 못하다가 성장하거나 가해자로부터 독립해 뒤늦게 상황을 알고 고통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일상생활에서 가해자와 우연히 대면하거나 유사 사건 보도를 접하는 등 어떠한 '트리거'를 통해 무의식 속에 존재하던 피해 기억이 재현되기도 한다. 이로 인해 피해가 발생한 지 한참 후에도 언제든지 새로운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

피해자 권리행사 가능할 때 소멸시효 시작해야

이에 피해자의 ‘실질적인 권리행사 가능성’을 기초로 소멸시효 기산점을 판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과거 성적 학대로 인한 후유증으로 볼 수 있는 정신질환을 진단받은 시기부터 소멸시효를 계산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3년이라는 단기소멸시효는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부터 진행된다. 김 변호사는 “피해자 등이 손해 및 가해자를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인식한 날을 의미한다”라며 “이때 그 인식은 손해 발생의 추정이나 의문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위법한 가해행위로 손해가 발생했다는 사실까지 알아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어린이집에서 열린 '굿네이버스 아동성폭력예방 인형극'을 감상한 어린이들이 안돼요, 싫어요, 하지마세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번 행사는 굿네이버스와 경찰청이 업무협약을 맺은 뒤 매년 1천여건 이상 발생하는 아동성폭력의 심각성을 알리고, 사회 안전망 구축 등 아동들에게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자 마련됐다. 2013.05.09

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어린이집에서 열린 '굿네이버스 아동성폭력예방 인형극'을 감상한 어린이들이 안돼요, 싫어요, 하지마세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번 행사는 굿네이버스와 경찰청이 업무협약을 맺은 뒤 매년 1천여건 이상 발생하는 아동성폭력의 심각성을 알리고, 사회 안전망 구축 등 아동들에게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자 마련됐다. 2013.05.09ⓒ뉴시스


김 씨 사건의 경우, 만 10살 때 성적 학대를 당하고 15년이 지난 2016년 가해자와 대면한 후 처음 과거 피해로 인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진단을 받았다. 그렇다면 김 씨가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은 새로운 후유증을 처음 진단받은 2016년으로 볼 수 있다.

실제 소송에서 가장 어려운 지점인 단기소멸시효 기산점은 연장됐으나, 장기소멸시효가 지난 경우라고 김 변호사는 말했다. 김 씨 사건에서 법원이 2016년을 단기소멸시효 기산점으로 인정해도,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청구를 기각할 수 있다.

그러나 소멸시효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부터 진행되기 때문에 “불법행위를 한 날”은 손해가 현실화된 시점으로 봐야 한다는 해석이 나왔다. 아동 성폭력 피해자들이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동 성폭력 특성상 피해자가 피해 당시 앞으로 발생할 손해 등을 예상하기 어렵다는 점이 반영됐다. 피해 시점과 손해 발생 시점 사이에 시간적 간격도 있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는 객관적, 구체적으로 손해가 발생한 때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는 논리다.

또 수십 년 전 발생한 성폭력 사건의 경우, 가해자가 혐의를 인정하거나 형사 판결을 확정받는 방법으로 가해행위와 손해의 인과관계를 입증할 수 있다. 이에 형사 판결을 확정받고 민사소송을 제기해 불법행위로부터 10년이 지날 수밖에 없는 현실도 지적됐다.

‘도가니 사건’ 이후 아동 성폭력 민사소송 위축돼

대표적인 아동 성폭력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 사건으로 이른바 ‘도가니 사건’을 꼽을 수 있다. 1985년부터 2005년까지 광주인화학교 교사들로부터 성폭행을 겪은 뒤 2011년 정신질환 진단을 처음 받고, 교육부와 광주시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한 사건이다.

이 사건 재판부는 소멸시효 기산점을 최초 정신질환 진단 시기인 2011년으로 인정하지 않아 소멸시효 완성을 이유로 청구를 기각했다. 김 변호사는 “장애 아동 성폭력 사건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판단”이라며 “이 사건 이후 아동 성폭력 피해자들의 민사소송이 위축됐다”라고 비판했다.



영화 도가니 포스터

영화 도가니 포스터ⓒ삼거리픽쳐스


이 사건 판결문을 보고 화가 났다는 김 씨는 “재판부는 아동 성폭력 사건 이후 피해자는 통상적으로 정신적 손해를 입기 때문에 사건 발생한 날 손해를 알았다는 취지로 판단했다”라며 “이런 논리면 만 10세인 제가 ‘나는 성폭력 피해자니 평생 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 괴로울 거야’라고 알아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자는 피해 사실을 잘 모른다. 증상 갖고 있어도 진단 전까지 알 수 없다”라며 “성범죄 피해자들은 다양한 증상의 원인을 찾기보다 고통을 버티며 그로부터 벗어나는 데 시간을 보낸다는 점을 재판부가 알아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일본 ‘구시로 PTSD 사건’ 좋은 판례… 한국도 필요해

이날 일본의 아동 성폭력 피해자 손해배상청구권 소멸시효에 대한 획기적인 판결로 꼽히는 ‘구시로 PTSD 사건’이 소개됐다. 3세부터 8세 사이 삼촌으로부터 성적 학대를 받은 여성이 2011년 30여 년 전 성적 학대로 인한 정신질환 진단을 받고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이다.

핵심 쟁점은 20년의 소멸시효 기산점인 ‘불법행위 시점’을 언제로 볼 것인가였다. 피고는 성적 학대가 끝난 8살을 불법행위 시점으로 보고 이로부터 20년이 지났기 때문에 권리 소멸을 주장했다. 반면 원고는 2011년 성적 학대로 인한 정신질환 진단을 받고 처음 피해가 현실화됐기 때문에 이때를 불법행위 시점으로 봐야 한다고 반박했다.

1심은 피해자의 청구를 기각했지만, 2심은 우울증에 대해 피해자가 30대에 이르러 처음 진단을 받았기 때문에 그 시점에 손해가 발생했고, 그 시점을 불법행위 시점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판단해 2억 7천여만 원의 청구를 인정했다.

마츠모토 카츠미 리츠메이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아동 성적 학대로부터 20년 이상 지난 사건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를 인정한 최초의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해당 판결의 배경으로 그는 “가해행위로부터 장기간에 걸쳐 손해가 발생한 경우, ‘불법행위 시점’을 ‘손해가 발생한 때’로 해석해야 한다는 대법 판례가 있었다”라며 “손해 발생 시점을 불법행위 시점으로 보는 해석은 권리행사의 객관적 가능성을 배려한 해석”이라고 설명했다.

마츠모토 교수는 한국 법원이 일본의 판례처럼 기산점을 넓게 해석해, 성적 학대가 발생한 지 17년이 지난 김 씨의 사건에서 피해 회복을 가로막아선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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